눈을 뜨니 늘상 보던 천장이었다. 마치 거미줄로 빗금을 친 듯이 일정한 패턴의 문양들. 네모난 면들 중 하나에 내가 들어가있겠구나,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몸을 일으키니 티비가 보인다.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에 손이 간다. 네모난 전자기기 안에 세상이 담겨져 있다. 요즘 미국 대선이 어떻다, 우리나라의 정권도 이를 반면교사 저쩌고, 코로나는 여전히 잠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의 범죄율이 늘고 있다더라, 우리는 혐오의 시대를 산다더라.. 멍하니 뉴스를 보고 있자니 우리 사회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참 살기 무서워지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잠깐만. 이 생각은 어제도 했던 것 같은데?

 

뱃 속에서 밥을 달라고 시위를 하는 소리가 요동치길래 평소처럼 라면 한 개를 꺼내서 물 받은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그러자 뱃속 함성소리는 더 커져온다. 구호를 떠올리자면

 

‘라면 1개를 누구 코에 붙이느냐. 몸 주인은 하야하라!’

 

어떻게 보면 타당해보이는 의견에 라면을 한개 더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몸 주인에게 유감을 표한다. 지금 온몸 구석구석 뒤룩뒤룩 찐 살들을 빼기로 한지 막 10시간도 안된 시점이다. 라면 2개는 무리라는 판단을 의거하는 바이다

 

머릿속에서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래 사실 그 말도 맞다. 내 몸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먹는 양을 줄여야만 한다. 그러자 위 아래로 누구의 의견이 맞냐고 아우성이다.

 

일단 나는 끓어오르는 물에 라면 한 개를 넣고 다른 라면의 반개를 부셔 1개 반만 넣는다는 결정을 타결했다. 마치 솔로몬과도 같은 결정에 뿌듯해하고 있을 무렵, 또다른 안건이 입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라면은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 국룰임을 인지하고 있을터, 지금 당장 편의점에 다녀오는 것을 건의하는 바이다.>

 

그때 머릿속이 반대했다

 

-그 의견 자체는 합당하나, 한 개에 밥을 말아먹는 것이였다면 몰라도 한 개 반에 밥까지 먹는 행위는 탄수화물의 과한 섭취로 인해 지방이 축적되는 것이 너무도 자명한 일이므로 반대한다.

 

‘일단 뱃속의 회충들 밥부터 배불리 먹여라. 이러다 굶어죽겠다!’

 

몸 속 이곳저곳에서 난리였다. 셋다 저마다의 명분을 갖고 있기에 누구의 편을 들 수 없어 나는 난감해졌다. 그러는 사이 국물이 증발한 냄비에서는 약간의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그 내용물은 버려야했다.

 

그새 여러 몸속의 기관들은 잠잠해지고

틀어진 티비에서도 여전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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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_ 지옥  (0) 2020.04.03

너는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너가 원해서였다.

너는 알고 싶었다,

네가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해.

 

너의 사고방식은 보편적인 사람들과 달랐다.

그것은 너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죄를 졌기 때문에 평생을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

 

그 속죄의 방식은 고통이었다.

너는 매번 체벌에 시달려야 했다.

마치 인간들의 죄악을 짊어진채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은 이 마냥,

모든 인간들의 죄악을 짊어지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처럼.

너는 고통에 익숙해져갔다.

아니, 익숙한 척 해야했다.

매번 고개드는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해 되묻고 하면,

이미 덧나있는 상처 속에 벌레가 기어가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너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제물이다.

모든 이들의 고통을 대신 감당할 의무를 지녔다.

너 자신을 신성시 여기기로 했다.

맞는 이유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 환상은 상처 속에 꿈틀대는 벌레만큼이나 끔찍하게 깨졌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너만 없었다면 내 인생은..”

 

너는 어머니의 혼잣말을 들어버린 것이다.

너의 어머니는 미혼모였다.

독실한 가톨릭 수녀였던 그녀는 하룻밤의 실수로 신도였던 남자의 아이를 배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그녀는 수녀로 살 수 없게 되었다.

너의 어머니는 너를 악마로 보았다.

자신을 하나님과 떨어뜨리게 만든 사탄.

선악과를 건낸 사탄은 그렇게

자신의 몸 속에 잉태되었다고,

너의 어머니,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너는 악마다.

그래서 나는 너가 지옥에 떨어지길 바라며

이 집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악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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