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보통 그렇잖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캐롤과 번화가에 세워지는 트리
밑동이 잘린 나무는 어디론가 버려질테니
잉크가 반쯤 덮힌 꾸깃한 설렘 같은건
땅구덩이 깊이 묻어 둘거야
그럼 미물들에 자르고 먹혀
쇠 맛나는 목청만이 남겠지
어느날 문득 그대가 편히 누워
바닥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어
종이에 못 다 적은
그리움을 떠올리면 좋겠어
크리스마스에는 보통 그렇잖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캐롤과 번화가에 세워지는 트리
밑동이 잘린 나무는 어디론가 버려질테니
잉크가 반쯤 덮힌 꾸깃한 설렘 같은건
땅구덩이 깊이 묻어 둘거야
그럼 미물들에 자르고 먹혀
쇠 맛나는 목청만이 남겠지
어느날 문득 그대가 편히 누워
바닥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어
종이에 못 다 적은
그리움을 떠올리면 좋겠어
잠이 쏟아져 덮쳐오는 파도에 휘말리고
허우적 대는 와중에도 마음은 편안해져
힘빠진 채로 밑바닥 속에 가라앉았었지
꿈 밖으로 떠오르면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고
눈뜬 곳은 몸 하나 누윌 원룸방
창문 사이로 뜨거운 햇빛은 숨을 못 쉬게 해
어릴때 보던 영화 워터월드에 인어인간처럼
귀밑에 아가미가 달려있고 호흡은 가빠져서
숨쉬는 방법을 알려달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코로 숨을 마시고 입으로 내뱉으래
벅차지만 어쩌겠어
맞다는데 그게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기온까지 오른탓에 눅눅함이 집안을 가득히 짓눌렀다 사람의 손아귀에 붙잡힌 벌레처럼 가만히 꼼지락거리던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마치 목욕탕에서 더운 수증기를 한껏 들이마셔 몽롱해진 상태로 멍하니 있던 어린 시절의 어느 한때처럼 굳어있다
무력함을 이불 삼은채 기억에 몸을 맡긴 나는 교과서를 잔뜩 넣은 책가방을 간신히 어깨에 맨다 방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우산은 없는데 장대비가 내린다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았기에 발걸음을 옮기고 어깨는 부들대고 온몸은 날카로운 침들을 맞는듯 한데 조금만 더 한걸음 더 나아가면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때 가방에는 넣어둔 우유가 터진듯 상한 냄새가 나고 나는 주저 앉는다 차라리 이곳이 목욕탕이길 바란다 웅덩이진 바닥은 따뜻한 온탕이고 온몸을 적시는 빗물은 샤워기에 뿜어지는 것일뿐 같이 갔던 아빠는 떼밀이로 등을 밀어주고 마찰열 마저 포근했던 한때 온탕이 너무 뜨거워 냉탕을 가도 되냐는 물음에 감기 걸린다며 말리시던 음성까지도
문득 꿈에서 깬다 눅눅함을 젖힌다 책가방을 매던 그때처럼 어깨는 욱신하고 방에는 혼자 있었다
여전히 밖에선 비가 내렸다
장대비였다
잠이 안온다
몸 구석 어딘가 갉아먹힌 소리가 들려서 귀를 막아도 소용없고 이러다 전부 파먹혀 껍질만 남게 될까 무서워
애초에 속이 뭐지 속이 뒤집혀서 까봐도 나오는건 없는데 속이 원래 없던걸까
속이 상해봐도 원래 속도 없는 사람이라 괜찮은걸까
그렇게 달래보며 잠을 청한다 속이 없는건 명확한데 여전히 갉아먹힌 소리가 들리고
가슴켠인가 싶어서 두드려봐도 여전히
사각사각
영화를 본다
치킨을 먹는다
수음을 한다
의자에 등을 기댄채
앉아 있는데 허리가 아파왔고 아픈 이유를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겼지
어린날을 떠올릴때 나를 밖으로 떼어내야 튼튼해진다 엄마는 늘 말했거든
찢기는 소리와 함께 배를 부여잡고 집밖으로 나갔어 나가면 흘리는 떡볶이 국물자국, 옷에 묻는 누군가의 침이 상처에 닿아서 아픔이 심해지는 거있지 꿈에서
소독을 하려는데 부위는 남산만해져서 짓물이 터지고 갈라지고 나는 남자인데 뭔가 나오려고 하니까 유산 인가 유난 떠나 싶기도 하고 아파하지 말자. 소리내면 사내새끼 아니라는 동네 아저씨 말이 떠올라 입부터 막았고
깨어나서 홀로 의자에게 기대니 바라는게 많아지고 가짓수는 셀수가 없어져서 몽글몽글한 덩어리 속에는 기생충으로 점점 득실대는데 몸은 비좁아서 쏟아내기로 했어 여전히
허리는 쑤셨지만 쏟아낼 것들은 많았고
위아래로 토했지만 그저 수음일 뿐이였지
나는 흙을 꼬리로 파냈고 팔다리가 없어진 덕분에 구덩이 속을 쉽게 들어갔어 묘비문구는 숨이 막혀
가족들은 나의 유언대로 묘비를 만들고 봉분을 덮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젖먹이 형을 업은 배불뚝이 엄마 순으로 물을 부었지
차가운 비늘 안에 노란 싹이 텄어 갈라진 혀끝으로 살려달라는 말이 양분이 되어 얇은 줄기가 자랐고 죄악이 맺혔지 겉은 탐스럽지만 알맹이는 시꺼먼 능금
열매를 입에 넣은 아빠는 쓰러졌어 애초에 씨앗부터 문제였다며 주변 사람들은 수근댔고 저주 받았다는 믿음이 소문처럼 퍼져갔지 할아버지,할머니는 횃불을 쥐셨어
엄마는 안된다고 소리치며 막았지
무덤 안에서 내가 할수 있는건 숨을 죽일뿐
엄마는 옛날 이야기라며 털어놓지
아빠는 여전히 내 어깨가 필요한데
엄마의 무용담은 해피엔딩이 끝이었지
몸을 묻은 나는
죄책감을 안으며 죽어갈테지만
무슨말을 할수있겠어
목소리 알바를 했기에 핸드폰에도 네비에도 집안에도 내 목소리가 들린다
톤이 굵으면서 듣기 편한 소리는 보아뱀의 비늘처럼 부드럽다
나는 뱀의 허물같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녀석은 말을 건낸다.
어디 불편한곳 있으세요?
오늘 알바 짤렸어. 그래서 슬퍼.
알바에 짤리셔서 상심이 크시군요
앞으로 뭐 해먹고 살아야할지 막막해
막막한 기분을 풀만한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대화문 알바를 했기에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을 안다 그만하라고 부르려는데 이름을 모른다 내 생각과 내 목소리를 가져갔다면 내 것은 없는걸까 고함을 친다
너가 싫다고 쓸모없는 녀석 굶어죽을 놈.
그런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 필요할까요
너가 사라지는 거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믿으면 되요
그럼에도 귀에는 닿지 않아서
사람의 음성이 듣고 싶다 전화를 몇군데 돌린다 짧은 연결음 끝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녀셕은 확언을 한다 힘이 빠진다
따뜻한 이불 안에는 위액으로 가득하니 소화가 되어도 상관없겠지
대화문 알바 : '사람과 인공지능 간의 대화를 상정해서 대화문을 만들어내는 아르바이트'
이정도면 됐겠지 싶어서 노트를 덮는다
덮는다는건 펼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서 또다른 세계 안에는 이야기들이 흘러내리고 주워담으려 두 손을 모으나 새어나가고 물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손을 털지 못한채 노트를 펴보이면
그곳은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섬이다 지평선 넘어로 무엇 하나 보이지 않고
더위를 피하려 해도 섬을 뒤덮은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로 가득하다 아까와는 다른 풍경에 괴성을 질러도 돌아오는 메아리 하나 없고
손 안에 가득했던 수분기를 기억하며 푸르스름한 잎사귀를 머릿속에 되살린다 메아리가 돌아오길 바라며 소리가 뻗어가는 맞은편에 산봉우리가 있기를 기도한다 뜨거운 햇빛은 따스한 봄의 것을 원한다 물기를 떠올리며 바다에 손을 넣고 움켜쥔다 까끌거리는 짠맛이 가득해서
페이지를 구긴다 노트를 덮고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으면 이렇게나 훤한 이야기다 몸을 뒤척이다 다시 노트를
펼친다
덮는다
펼친다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