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됐겠지 싶어서 노트를 덮는다

덮는다는건 펼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서 또다른 세계 안에는 이야기들이 흘러내리고 주워담으려 두 손을 모으나 새어나가고 물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손을 털지 못한채 노트를 펴보이면

그곳은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섬이다 지평선 넘어로 무엇 하나 보이지 않고

더위를 피하려 해도 섬을 뒤덮은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로 가득하다 아까와는 다른 풍경에 괴성을 질러도 돌아오는 메아리 하나 없고

손 안에 가득했던 수분기를 기억하며 푸르스름한 잎사귀를 머릿속에 되살린다 메아리가 돌아오길 바라며 소리가 뻗어가는 맞은편에 산봉우리가 있기를 기도한다 뜨거운 햇빛은 따스한 봄의 것을 원한다 물기를 떠올리며 바다에 손을 넣고 움켜쥔다 까끌거리는 짠맛이 가득해서

페이지를 구긴다 노트를 덮고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으면 이렇게나 훤한 이야기다 몸을 뒤척이다 다시 노트를

펼친다

덮는다

펼친다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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