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취향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어릴때는 돈주고 사먹는 것이 이해가 안됐던 국밥종류들을 20대가 되어서는 없어서 못먹는 지경이다. 탄 냄새와 함께 혀 끝에 닿자마자 쓴내가 올라오는 커피는 이제와선 그 탄내가 묘한 풍미로 느껴진다. 쓰기만 했던 검은 액체는 오히려 깊은 커피 향을 가미시켜주는 조미료 역할을 한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커피보다 더 맛있는 음료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지만 이미 입은 길들여져 있다. 그러한 현상을 소위 애 입맛에서 어른 입맛으로 바뀌었다고들 한다. 신기한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 못먹는 음식들이 가득한데 말이다.

입맛만 어른으로 바뀌어가고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라 할 수 밖에 없다.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들, 학교에서의 배움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떠드는 정보들은 우리의 관념과 기준형성에 많은 영향을 준다.

사람으로서의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나 많은 사회적 시사점이나 이슈에 대한 개인의 생각, 옳고 그름의 판단 등등. 아이때는 무심코 넘길만한 부분들에 20대에 들어서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흔히 머리가 컸다는 것이 이러한 부분인데 한가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관심은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 같은 것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인터넷 커뮤니티든 주변에서든 어른의 조건에 대해 떠들고는 한다. 빼놓지 않고 나오는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철이 들게 된다는 정신적인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좁은 의미에서 부모님께 효도를 한다거나 어른들을 공경한다는 유교적 발상도 있겠지만 넓은 의미로는 본인 행동에 책임감을 가지며 언행 하나하나에 조심을 가하는 성인의 면모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이러한 어른의 조건에 미달되는 이들을 목격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성인은커녕 집에서 가족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며 편의점 야간알바를 잠깐이라도 해보면 알 수 있는 잔뜩 술에 만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이들, 지인과 만날 때 자기 할말만 떠드는 사람, 쉽게 다른 이를 무시하는 사람,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에티켓이 없는 모습들.

이외에도 실리지 못한 여러 사례들 가운데 심지어 스스로조차도 어른의 조건에 미달되는 행동을 했던 기억들이 우리들에게는 남아있다. 우리는 미성숙하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간혹 생각해보면 어른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 떠있는 달과도 비슷할까. 밤마다 환하게 떠있는 달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하지만 주변 그 누구도 달에 직접 가본적은 없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달의 표면을 접하고 그것이 어떠한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할뿐.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달은 그저 진노란색을 띈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내 가슴 속에 하나의 심벌로 자리잡아 삶의 지침을 가리킨다. 오히려 멀기 때문에 마음 안에 담아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지니게 되니까. 그 욕망이 일종의 동경과도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어른은 일종의 욕망이자 동경이라 말하고 싶다. 완전한 어른이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완전한 성인이라는 존재가 불분명한 것처럼, 그저 다다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어른으로의 첫 시작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조차도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지금 썼던 글을 부정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글은 어른을 20대 나름대로 정의내리려는 치기어린 에세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 또한 어떠한가 싶다.

입맛 또한 나이를 먹을수록 바뀌어가는데 생각이야 언제든 바뀔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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